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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그래도 경제학이다(생각의 힘)

by 보통의 작가 2021. 3. 17.

0. 들어가며

좌하향-우상향 하는 경제학 수요-공급 그래프를 웬만한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본적 있을 것이다. 셀 수 없이 많은 경제활동의 본질을 그래프 하나로 설명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가끔 자만심으로 치닫기도 한다. 2009년 국제금융위기에서 경제학은 그 무력함을 민낯으로 드러냈다. 혹자는 경제학만이 ‘과학’의 꼬리표를 붙일 수 있는 유일한 사회과학 분야라 말한다. 경제학이 지닌 논리적 엄밀성과 수학적 명증함을 무기로 말이다. 그러나 논리적 엄밀성에만 점철되었던 경제학은 현실 설명력, 미래 예측성에 있어 낙제점을 받기 충분할 만큼 그 권위를 잃어가기도 한다.

이 책은 경제학이 지닌 ‘모델’에서 그 원인과 해결책을 찾고 있다. 우리는 수많은 경제모델을 접하며 살아간다. 미시적 분야에만 통용되는 모델과 보다 거시적 경제시스템 작동원리를 설명하는 모델이 있다. 모델이 다양하다는 것은 곧 현상을 어떤 모델로 분석할지에 대한 선택의 문제를 가져온다. 그 기로에서 잘못된 판단은 잘못된 해결책으로 귀결되며 정책의 실패를 야기할 수도 있다.

이런 점은 경제학이 무용하다는 논거로 비화될 수 있다. 그러나 경제학은 여전히 중요하다. 모델은 개개의 독립적 특성을 지니면서도, 더 나은 진리구축이라는 구심점을 향해 일종의 공동전선을 이루고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다양한 모델끼리 경쟁한다는 점은 더 나은 모델 개발의 가능성을 품고 있는 것이다. 경제학은 올바른 판단의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서 생활영역 곳곳에서 기능하고 있다. 경제학이 지닌 다양한 모델의 선택가능성이 오히려 무한한 발전 가능성의 토대로서 인식되어 진다면 경제학의 의미는 여전히 유효할 뿐 아니라 인간의 삶에서 떼어낼 수 없는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1. 제1장 모델의 역할

경제학 공부는 일련의 모델을 배우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모델은 경제학자들의 자존심의 원천이 된다. 반면 비판적인 사람들이 보기에 경제학자의 모델에 대한 의존은 경제학의 가장 큰 문제다. 사회의 복잡성을 몇몇 단순한 관계들로 환원하고, 명백히 사실이 아닌 내용을 기꺼이 가정하며, 현실보다 수학적인 엄격함에 대해 집착하고, 정형화된 추상으로부터 정책 결론으로 흔히 비약하는 등의 잘못이 그것이다. 경제학에 대한 또다른 비판은 경제학이 평범한 내용을 복잡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러나 경제학자들이 만드는 단순한 종류의 모델은 사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이해하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 역시 기억해야 한다.

모델이 유용한 이유는 그것이 현실을 포착하기 때문이다. 경제모델이란 특정한 메커니즘을 다른 혼란스러운 영향들로부터 분리하여, 그것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보여주기 위해 설계된 단순화로 정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경제모델이 단 하나의 진리를 표방하는 것은 아니다. 경제모델은 가능한 결과가 무엇에 달려 있는가에 관해 정확히 이야기해주기 때문에 쓸모가 있다. 최저임금 정책이 고용에 미치는 영향 역시 단 하나의 결론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해당 정책이 현재의 임금 구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모델의 가치는 한 번에 하나씩 특정한 인과관계의 메커니즘을 분리하고 식별할 수 있다는 데에 있다. 이 메커니즘들이 특정한 인과관계의 작동을 알기 어렵게 만들 수 있는 수많은 다른 메커니즘들과 함께 작동한다는 사실은 과학적 설명을 시도하는 모두가 직면하는 어려움이다. 따라서 부차적으로 경쟁하는 많은 모델 중 어떤 것이 당면한 현실을 가장 잘 설명하는지 알아내도록 노력해야 한다. 중요한것은 어떤 모델의 적용가능성은 결정적인 가정들이 얼마나 현실세계를 잘 반영하는가에 달려 있다. 그리고 어떤 가정을 결정적으로 만드는 것은 부분적으로 그 모델이 무엇을 위해 사용되는가에 달려 있다.

정리하면 모델은 그 단순성이 지니는 의미의 전달력에서 가장 큰 의의를 지닐 수 있다. 오히려 복잡함은 그 의의를 해칠 수 있는 것이다. 복수의 단순 모델의 등장도 필연적이다. 어떤 기준에 따라 단순화를 기했느냐에 따라 시각자체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선택과 집중, 모델 그 자체가 진실은 아니지만 모델 내에는 반드시 진실이 들어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우리는 세계를 단순화시킴으로써만이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2. 제2장 경제모델 만들기의

경제학은 사회과학이고 사회는 근본적인 법칙을 가지고 있지 않다. 사회과학이 대상으로 삼는 인간은 여타 과학의 대상인 바위나 행성과 달리 주체성을 지닌다. 사람들은 그들 스스로 무엇을 할지 결정한다. 또한 그들의 행동은 거의 무한한 다양성을 지니고 있다. 경제모델은 때로는 현실과 동떨어진 수학과 법칙의 문제로 치부될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의 경제 혹은 비경제적 행동에 대한 관찰된 정보 그 자체가 경제모델을 중심으로 한 학문을 대체할 수는 없다. 관찰된 현실의 증거를 적절히 ‘해석’할 수 있으려면 그것을 경제모델에 새겨 넣어야 한다. 이때 모델이 더욱 명시적일수록 증거를 해석하고 추론하기 위한 가정은 더욱 투명해진다.

경제학의 지식은 더 나은 모델이 나쁜 모델을 대체하며 수직적으로 축적되기 보다는 이전의 모델이 설명하지 못하던 특징들을 설명하는 새로운 모델과 함께 수평적으로 축적된다. 즉, 새로운 모델은 낡은 모델을 대체하지 않는다. 새로운 모델은 어떤 환경에서 더욱 적절할 수 있는 새로운 차원을 도입하는 것이다. 또한 새로운 모델들이 이전 세대의 모델들을 부정하거나 덜 적절한 모델로 만드는 것은 아니다. 그것들은 경제학의 통찰의 범위를 단지 확장시킬 뿐이다. 이전의 모델은 여전히 쓸모가 있다. 우리는 다른 모델을 이전의 모델들에 추가하는 것이다. 본질적인 것은 경제학 더 자세히는 다양한 현상을 설명하는 다양한 경제모델들은 언제든 새로운 모델에 의해 반박되어 질 수 있으며, 그러한 반박의 가능성이 경제학을 하나의 사회과학으로의 반열에 올려놓아지게 만든다는 것이다. 일국의 부채규모가 GDP의 90%를 넘어설 경우 경제성장의 음의 효과를 가져온다는 분석에 대해 그들의 분석과정의 오류를 비판했던 일련의 사례를 소개하며, 경제학의 반박가능성과 그러한 논쟁 속에서 진보하는 특징을 보여준 것처럼 경제학은 권위와 위계의 선상에서 벗어나 사회현상에 대한 진리를 탐구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경제모델은 누군가의 머리 속과 책상위에서만 존재하는 학문이 아니라 끊임없는 실증과 새로운 모델의 반박 그리고 그 속에서 수평적 축적으로 이루어 나가며 인류의 삶을 보다 더 가치있게 만드는 과정의 일환임을 확인해야 한다.

 

3. 제3장 모델의 선택

 경제학을 과학으로 만드는 것은 모델이다. 그 모델이 우리의 삶을 어떻게 개선시킬 수 있을지에 관해 사용될때 경제학은 쓸모 있는 과학이 된다. 어떤 모델을 사용할 지 결정하는 것은 모델들을 엄밀하게 조사하고, 그중에서 선택함을 의미한다. 그 과정에서 검증을 통과하지 못한 모델들은 폐기되고 통과한 가설은 수용된다. 물론 경제학자들이 이러한 경제 모델을 만드는데만 목표를 두는 것은 아니다. 경제학자들은 세계는 실재로 어떻게 움직이며, 우리는 어떻게 현실을 개선할 수 있는가에 대해 관심을 가진다. 이러한 숙고과정 속에서 올바른 경제모델은 관련된 모든 것들 중에서 무엇이 정말로 인과적인가를 이해하도록 해주는, 결정적인 관계를 분리해서 보여주는 모델이다.

또한 모델의 실증적 타당성에 중요한 것은 모델의 결정적 가정들이 얼마나 현실적인가 하는 것이다. 가정들이 현실적으로 변화한다면, 상당히 다른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예를들어 유가의 향후 방향을 예측하려 할 때 참고할 모델의 가정이 어떠느냐에 따라 정반대의 결과에 직면할수도 있다. 예컨대 유가 시장이 시장지배력을 지닌 몇개의 기업의 과점 상태인지 아니면 완전경쟁시장을 가정하는지에 따라 그 결과는 천차만별일 수 있는 것이다. 경제상황을 예측함에 있어 이러한 가정을 정확하게 파악하느냐는 단순히 기업의 시장진입 여부를 넘어 세계 경제를 위기에 빠뜨릴수도 있다. 1980년대오 1990년대 대부분의 경제모델이 규제를 철폐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가정했고, 이는 큰 역효과를 불러왔다.많은 모델들이 규칙적으로 관찰되는 사건들을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진다. 이러한 모델은 현실의 설명 자체가 목적이므로 모델의 결과는 당연히 현실과 일치한다. 물론 현실을 설명하기 위한 목적이 아닌 수학적, 논리적으로 아름다운 귀결을 모색하는 모델들 역시 많다. 이들이 현실을 정확하게 설명하지 못한다고 해서 가치가 퇴색되는 것은 아니다.

모델이 주는 또다른 장점 하나는 그것이 최초의 관찰 또는 연구의 동기가 된 문제를 넘어서 광범위한 결과를 제시한다는 것이다. 또한 모델은 귀납추론의 결과를 연역추론의 결과로 이어지도록 한다. 일국의 세계경제 개방성이 높을수록 공공지출이 높다는 결론의 연구는 그자체가 귀납적 결론이다. 하지만 왜 개방성이 높은 국가에서 공공지출이 늘어나는지에 대한 분석은 연역의 영역이다. 개방성이 높아질수록 나타나는 경기변동성의 완충역할을 위해 공공지출이 높음을 분석해 냈다면 이는 귀납에서 연역으로 연결되는 모델의 역할을 잘 보여주는 사례가 된다. 모델이 지닌 외부적 타당성은 그 모델의 가치를 판가름 내는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다. 물론 외적 타당성 그 자체를 과학적으로 대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많은 것들이 근본적으로 유추에 기초한 추론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모델세계와 현실세계의 간극은 귀납적인 추론에 의해 메워져야 함을 그리고 이것은 유사성, 현저함, 신뢰성에 관한 주관적 판단에 달려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4. 제4장 모델과 이론

경제학에서 가장 근본적인 질문은 ‘무엇이 가치를 창출하는가’일 것이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 질문이 근본적인것으로 느껴지지 않는 것은 이미 경제를 다룬 이론적 발전이 그와 관련된 복잡한 혼란을 해결했기 때문이다. 고전파 경제학자들은 생산비용이 가치를 결정한다고 설명했다. 어떤 재화에 더 많은 비용이 들어갈수록 그 재화의 가격은 상승하는 것이다. 한계주의자들은 가격이 한계에서 결정된다는 현대적 가치론의 통찰을 확립했다. 예컨대 석유의 경우 평균적인 석유의 생산비용이나 소비자의 선호가 아니라 판매되는 석유의 마직 단위 비용과 가치에 의해 가격이 결정되어 짐을 의미한다. 한계주의자들은 수요와 공급 곡선이 바로 각각 소비자의 한계적인 가치와 생산자의 한계비용을 나타내는 것임을 발견했다. 시장가격은 두 곡선이 교차하는 점에서 결정된다. 가치가 생산비용에 따라 결정되는가 아니면 소비자의 편익에 의해 결정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 이들은 둘 모두에 의해 결정된다는 답을 제시한 것이다. 이러한 접근 곧 생산비용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 노동자의 수입인 임금은 노동의 한계생산성에 의해 결정되고 자본가의 수입인 이윤은 자본의 한계생산성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노동, 자본 그리고 다른 투입요소에 그들의 한계생산성만큼 지불하면 언제나 완전하게 배분할 수 있음을 보일 수 있는 것이다.

1970년대 말 루카스는 고전파의 생각을 새로운 형태로 거시경제학에 재도입한다. 루카스와 사전트는 합리적 개인들을 거시경제학에 다시 도입한 것이다. 개인이든 정부든 그들 모두는 예산제약을 명시적으로 분석대상으로 고려하며, 소비는 현재의 소득뿐 아니라 미래의 소득에도 달려있으며 오늘 정부의 재정적자는 미래의 세금 인상을 의미한다는 것 등이다. 합리적 기대 가설이 경제학을 강타한 것이다. 이 외에도 국제무역과 관련한 리카르도의 비교우위론, 헥셔-올린과 같은 요소부존이론 등 경제적 상황을 해석하고 분석하는 많은 경제모델들이 등장하고 지금도 발전하고 있다. 이론이라는 단어로만 평가해보면 경제학에는 수많은 이론이 있지만, 이론이라는 단어에 속아서는 안된다. 현실에서 이들 각각의 이론은 단지 모델들의 특정한 조합이며, 상황에 신중하게 그리고 조심스럽게 적용되어야 한다. 각각의 이론은 그것이 연구하는 현상에 관한 만능의 설명이 아니라 도구 세트로서 역할한다. 허쉬만은 모든것을 포괄하는 이론을 공식화하려는 의욕이 우연의 역할과 현실 세계가 펼쳐지는 다양한 가능성들에 대해 눈감게 만들것이라 우려했다. 즉, 모든것을 설명할 단 하나의 이론의 탐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시기에 하나의 원인에 대한 이해를 찾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의의를 지니고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5. 제5장 경제학이 틀릴 때

경제학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그 조건하에서 하나의 결론 혹은 그 반대의 결론이 옳게 되는 명시적인 조건들이다. 그러나 맨큐가 그의 블로그에 올린 글들 중 많은 지지를 받은 글들은 기존의 경제학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어오던 명제들과는 상반된 입장을 보였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서 우리는 경제학의 주요한 역설 중 하나를 알 수 있는데, 바로 다양성 내의 동일성이다. 경제학자들은 모든 종류의 모순되는 결론들을 제시하는 수많은 모델들을 가지고 작업을 한다. 그러나 현실의 이슈들이 쟁점이 될 때, 경제학자들의 의견은 종종 유력한 증거를 갖추지 못한 방향으로 수렴되곤 한다. 경제학자들이 어떤 모델을 유일한 모델로 혼동하는 경우 두가지 실패가 나타날 수 있다. 첫째, 누락의 오류이다. 닥쳐오고 있는 문제를 보지 못하는 맹점이 나타나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2007~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만들어낸 위험하고 복잡한 사건들을 이해하는데 실패했다. 둘째, 확신의 오류이다. 경제학자들이 특정한 세계관에 집착하여 실패가 미리 예측될 수도 있ᄋᅠᆻ던 정책에 공모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소위 워싱턴 컨센서스 그리고 금융세계화에 대한 경제학자들의 지지가 바로 그런 것이다.

경제학자들은 거칠게 말해 시장에 관한 지식을 독점한 듯이 생각한다. 즉, 자신들은 시장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아는 반면, 대부분의 대중은 그렇지 못하다고 우려한다. 경제학자들은 시장이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실패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시장 실패에 대한 대중의 우려는 종종 대중이 잘못 알고 있기 때문이며, 과장되어 있고, 정당화될 수 없다고 생각하여 시장을 과도하게 옹호한다. 수요-공급, 시장 효율성, 비교우위, 인센티브 등 그들은 무지한 대중으로부터 지켜낼 필요가 있는 소중한 것들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경제학자들이 하나의 모델을 유일한 모델로 다루기 시작하면 문제가 발생한다. 이야기가 스스로의 생명을 가지고 그것을 만들어낸 환경으로부터 분리되면서 더 유용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감춰버리는 변질을 겪을 수 있는 것이다. 경제학에 필요한 것은 더 적은 거시적 아이디어와 더 많은 다른 견해들이 공개적 논의에 참여하는 것이다. 상황이 요구하는 대로 하나의 설명 틀에서 다른 것으로 옮겨갈 수 있는 경제학자들이 올바른 방향을 가리킬 가능성이 더욱 크다.

 

6. 제6장 경제학과 그 비판가들

경제학이 단순하다고 비판받지만 단순성은 사실 과학의 필수조건이다. 핵심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많은 것을 생략해야만 하는 것이다. 다만 단순화 그자체에 매몰되어선 안되며, 인과적인 메카니즘이 서로 강력하게 상호작용하여 분리될 수 없는 경우 모델은 그러한 상호작용을 꼭 포함해야 한다. 또한 경제모델이 비현실적인 가정을 한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완전경쟁, 완전정보, 합리적 개인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가정하에 도출된 결과들이 완벽하게 현실을 설명해야만 그 모델이 의미가 있는것은 아니다. 진공상태의 결과와 현실과의 괴리를 통해 일정한 판단의 기초가 되어줄 수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의미를 지닌다고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경제학의 이론들이 검증될 수 없다는 비판 역시 존재한다. 그러나 경제학을 자연과학의 엄밀성과 견주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경제학은 사회과학이며 이는 보편적인이론과 결과를 찾는 것이 헛됨을 의미한다. 하나의 모델은 고작해야 특정한 맥락에서만 타당할 뿐이다. 경제학이 예측에 실패한다는 비판 역시 이와 동일한 맥락에서 반박가능하다. 경제학이 지닌 모델의 다양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특정한 모델이 설명할 수 없는 현실의 문제를 들어 경제학 전체를 비판하는 것은 옳지 않은 것이다.

경제학은 잠재적으로 적용 가능한 모델들을 늘려가면서 진보한다. 최근에는 행동경제학, 무작위통제실험, 제도 등이 새롭게 등장하고 있다. 이들은 외부 학문들(심리학, 의학, 역사학)로부터 엄청나게 큰 영향을 받으면서 이론의 완성도를 높여가고 있다. 즉, 이들의 성장 그자체가 경제학이 폐쇄적이라는 비판을 불식시키기에 충분한 증거가 될 것이다. 이처럼 많은 비판이 존재하지만 경제학은 여전히 우리 시대의 거대한 공적 문제들을 처리하는 많은 디딤돌과 분석 도구를 제공하고 있음을 주지해야 한다. 경제학이 결정적이고 보편적인 대답을 제공하는 것은 아니며 그래서도 안된다. 칼포퍼가 말했듯 반박가능성의 존재가 있어야만 과학으로서의 가치를 획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제학이 엄밀하게 제시하는 결과는 가치, 판단 그리고 윤리적, 정치적 또는 실용적 성격에 대한 평가와 결합되어야만 한다. 이것들은 경제학이라는 학문과는 별로 관계가 없지만 현실과는 매우 긴밀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경제학은 여전히 우리 삶이라는 현실과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면서 더 나은 삶을 위한 판단과 행동의 토대가 되어 주고 있다. 여전히 경제학은 중요하다.

 

7. 나가며

2009년 빚어진 미국발 세계금융위기는 기존의 경제학이 쌓아온 모든 명성을 하루아침에 무너뜨렸다고 평가할 수 있을 정도로 갑작스럽고 예측하지 못한 상태로 맞딱드릴 수 밖에 없었다고 평가받는다. 하지만 그 원인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경제학이 간과했던 많은 많은 문제들을 발견할 수 있었고, 어쩌면 기존의 경제학이 지녔던 오만함이 그러한 결과를 가져왔거나 적어도 위기의 진폭을 키웠다는 평가가 가능했다. 여전히 경제학은 중요한 것이다. 예측하지 못했던 위기의 원인을 분석하는 과정 역시 경제학이 가장 선두에 선다. 경제학은 유일무이한 진리가 아니다. 다른 과학과 마찬가지로 끊임없이 반박되고 새로운 모델과 이론들의 통폐합을 거치면서 논리적 엄밀성과 현실예측력을 보강해 나감을 다시한번 인식해야 한다. 이 책 역시 경제학이 지닌 맹점과 비판점들을 숨김없이 인정한다. 그 과정에서 경제학이 여전히 인간 행동의 가장 중요한 판단기준이 될 수 있음이 오히려 두드러짐을 확인할 수 있다. 다양한 맥락에서는 각각의 맥락에 맞는 초점을 지닌 경제모델의 발전이 불가결하다. 그러한 모델의 다양성은 단순히 파편화된 이론의 나열이 아니라 수평적인 진리의 축적에 다름아님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경제학이 지닌 이상적인 가정들 역시 진공상태에서 실험한 결과가 현실과 동떨어졌다고 비판받지 않는 것과 동일한 이치로 우리의 현실이 상태가 어떤지를 비교해줄 하나의 준거기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요컨대 여전히 경제학은 중요하고, 앞으로도 인간의 삶에 필수적인 모델들을 끊임없이 제공하고, 발전되어 나갈 것임을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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