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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보고서의 표정

보고서 쓰는 법 = 보고 잘 하는 법

by 보통의 작가 2021. 7. 26.

보고서를 잘 쓰는 방법은 무엇일까? 나름 보고서충이라 자칭할만큼 많이도 써보고 많이 수정도 해보고, 까여도 봤는데 여전히 어렵게만 느껴진다. 표현을 잘 써야 되는지, 목차를 잘 짜야 되는지, 내용이 자세해야 되는지, 아니면 반대로 내용이 잘 읽히도록 쉽고 짧아야 하는지... 천차만별인 가이드라인 앞에서 매번 한숨만 나온다.

그러다 "보고"를 잘 하는 과장님을 모시게 되면서 그 실마리를 어느정도 풀게 되었다. "보고서"가 아니라 "보고"를 잘 하는 과장님이었다. 물론 "보고서"도 잘 쓰셨다.

나는 꽤나 고민해서 썼다 생각하고 과장님께 보고드리면. 과장님은 곧잘 틀을 바꾸거나 내용을 첨삭하셨다. 안해본 사람은 모른다. 내가 고민해서 쓴 워딩이 처참히 줄 그어지고 별반 차이도 없어보이는 내용들이 수정되는 상황의 자괴감을 말이다.

그런데, 그렇게 수정된 보고서를 들고 실장님 보고를 하러 들어가면, (수정은 내가 했지만 과장님이 실장님께 보고를 드리게 되는데,) 그 보고가 정말 쪽집게 과외처럼 얼마나 깔끔하게 들리는지 모른다. 너무너무 쉽게 이해되도록 보고를 하셨기 때문에 또 듣고 싶을 정도 였으니까...

어떻게 그렇게 보고를 잘 하는지 부럽고 궁금했다. 처음 내가 생각한 것은 엄청 공부를 많이 하신다는 것이었다. 수험생처럼 자료들을 바인더에 철해 놓으시고, 시간이 될때마다 형광펜으로 하이라이트를 치기도 하면서 업무를 공부하셨다. 과장으로 부임하고 얼마 안되는 시기까지는 고시생처럼 업무를 매일 공부하는걸 봤다, 업무 파악이 확실하니까 보고도 잘 하는 거라 생각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외에도 다른 특징도 있다. 과장님도 실장님께 보고드릴땐 보고서를 놓고 보고 한다. 위원회와 같은 큰 회의에서 위원들에게 하는 보고는 한두장으로 끝나지 않기 때문에, 반드시 자료를 보면서 넘기며 보고를 드려야 한다. 2년여간 과장님을 보면서 깨달은 두번째 생각은, 보고서를 작성하고 보고를 하는게 아니라 보고를 한다고 생각하면서 보고서를 쓴다는 것이었다.

주제가 정해지면 작성되는 내용은 다 비슷비슷하다. 그게 그거 인것 같은데, 과장님은 문장의 순서를 바꾸거나, 단어를 바꾸거나,논리를 추가하셨다. 처음엔 "그냥 본인이 쓰지 왜 날 시킨대?"라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몇번을 경험하다보니 내용이 틀려서 수정하는게 아니라 자신만의 보고스타일에 맞게 보고서를 수정하기 위해 지시를 하는 것임을 알게 됐다.

보고해야 될 주제가 정해지면, 구두로 어떻게 보고를 할지를 시뮬레이션 하면서 보고서를 맞춰 가는 식으로 내 보고서를 수정하셨던 거다. 보고서를 일종의 시나리오처럼 여기는 것 같았다. 정해진 틀이 있어서 그 틀에 맞추기 위한 단어와 논리를 집어 넣는게 아니라. 시작부터 어떤 이유로 이 보고를 하게 되었는지, 그래서 뭐에 대해 주로 논의할 것인지, 그 내용의 구체적인 것들은 어떤것들이 있는지를 마치 대본쓰듯이 정리해서 보고서라는 형식에 담아내는 느낌이 었다.

그렇게 이해하고 보니, 과장님이 갑자기 왜 이목차를 빼고, 이 목차를 넣었는지, 문장의 순서를 뒤바꾸셨는지 이해가 됐다. 동일한 내용을 전달하더라도 사람은 자신만의 화법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자신만의 대본에 어색한 부분을 재배치하고, 수정을 해오셨던 것이다.

그 이후로 나도 그렇게 보고서를 바라보고, 수정을 할때도 내가 어떻게 말을 할지를 염두에 두면서 보고서를 작성하고 수정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보고서에 담기는 핵심 내용은 다 비슷비슷하다. 그 주제에 대해 고민해보고 자료를 찾아본 사람이라면 말이다. 잘된 보고서와 별로인 보고서는 "보고"라는 행위와 합쳐질때만 구분가능한 영역이라는 생각을 한다.

요컨대 보고서 잘 쓰는 법은 해당 주제로 보고를 드린다는 시뮬레이션을 돌리면서, 대본을 쓴다는 마음가짐으로 작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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