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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보고서와 외국 보고서의 차이

by 보통의 작가 2021. 5. 1.

제목을 적고 보니, 웃지 못할 에피소드 하나가 생각났다. 몇 달짜리 큰 프로젝트에 매달려있던 때였다. 아침부터 회의가 줄을 이었고, 전화와 메일이 끊이지 않았다. 평소라면 아침에 체크리스트를 만들어서 하나씩 도장 깨듯 차분하게 일을 했을텐데, 당시 그런 여유는 말그대로 사치였다. 메일을 들어가보니 역시나 한 페이지가 훌쩍 넘는 메일이 밤 사이 쌓여 있었다. 상대방과 시차를 두고 일을 하다보면 자는 동안에도 일거리가 쌓인다. (분명 한참을 밭에서 잡초를 뽑았는데 뒤돌아보니 그 자리에 잡초가 올라오고 있었다는, 호주 워킹홀리데이 경험자인 친구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메일이 안 줄어...)

 

OECD에서 온 메일이었다. 그간 업데이트된 자료를 보내달라고 한다. 시한폭탄을 넘겨 받았으니 다시 돌려줘야한다는 급한 마음으로 답장을 했다. Dear Alex, I'm sending you an updated version of the document. Please find it attached. Thanks. 그리고 자료를 첨부했다. 그리고 몇 시간 지나 답장이 왔다. Hi, thanks for the updates but could you please send it again in the form of a word document? It seems that I cannot open it here. Thanks. 그렇다. 외국인한테 한글 파일을 보낸거였다. 확장자 .hwp를 보고 얼마나 어이없었을까.

 

사실 외국 기관과 일할 때, 파일 확장자 말고도 고려해야할 것이 몇 가지 있다. 우리나라 보고서는 '보통의 작가' 블로그에서도 많이 다뤘듯이 1) 구조를 갖추는 형식과 2) 명사를 많이 쓰는 개조식이 특징이다. 그렇다면, 외국정부와 국제기구의 보고서는 어떨까? 

 

외국 보고서는 그 목적이 무엇인지에 따라 형식이 달라지는데, 보고서 종류는 제안서(proposal), 프로젝트의 주요내용(concept note), 국가 또는 기관 간 약속하는 내용이 담긴 MOU(Memorandum of understanding) 등 다양하다. 다만, 외국 보고서는 우리나라 보고서와 달리 (자간이나 글자체와 같은) 틀이 엄격하지 않고, (MOU 조항과 같이) 리스트업이 필요한 요소 외에는 개조식이 아닌 서술식을 쓴다. 그렇다보니 외국 보고서는 윗 단락 헤드를 보지 않고는 모두 비슷해보일 수 있고, 다소 길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주요 내용은 대부분 단락의 첫 문장에 많이 담겨있어 빨리 스캐닝할 때는 첫 단락을 통으로 읽거나, 각 문단의 첫 문장 또는 볼드체 위주로 보는 것이 좋다.

 

반대로 외국인이 우리나라의 보고서를 보면 어떨까? 우리나라 보고서를 그대로 직역한 영문 보고서를 보면 상대방은 적잖이 당황스러울 수 있다. 표가 많이 등장하고, 완벽하지 않은 문장이 네모(ㅁ), 동그라미(ㅇ), 당구장 표시(), 별표(*)에 담겨 오니 말이다. (어떤 문서를 보면 심지어 신명조로.. ㅠㅠ) 보고서는 상대와 의사소통하는 방법 중 하나인데, 알 수 없는 문자들이 들어있는 문서를 열면 왠지 모르게 그들의 마음이 닫힐 것만 같다. 귀찮을 수 있는 작업이지만 이럴땐 우리 보고서가 담고 있는 중요한 내용을 상황에 맞게 의역해 줄글로 정리하는 것이 좋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ㅇ (기대효과) 민간부문에서 공유경제가 활성화됨에 따라 행정 분야에도 공유 모델을 적용하여 선점 이익을 확보

정부 보고서에 자주 등장하는 형식이다. 이 기대효과는 아래와 같이 정리해주면 외국인의 이해를 조금 더 높일 수 있다.

[...] With the rapid growth of the sharing economy in the private sector, it is expected that the government will design, implement sharing economy business models to make positive changes in citizens' lives. 

안 좋은 예는 이정도 모습일 수 있을 것 같다.

ㅇ (Expectation) Following the sharing economy in the private sector, government pre-occuping advantages by adapting sharing economy models in the public sector

아무래도 외국 기관에 보내기 위해 한글 보고서를 영문으로 직역하다보면 비문이 된다.

 

+ 외국 보고서는 대부분 워드로 작업하고, 요즘에는 구글닥스 링크를 공유해 "살아있는 보고서"에 서로 코멘트하기도 한다. 업무상의 거리가 점점 줄어드는 느낌...은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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