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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보고서의 표정

1장 보고서 만들기 1

by 보통의 작가 2021. 3. 2.

오늘은 보고서 형식을 다루려 한다. 나는 항상 일종의 의식을 치른 뒤 보고서를 작성한다. 한글 프로그램 기준으로 편집 용지 설정을 열어 좌우 20mm, 위아래 머리말 꼬리말 15mm, 위아래 쪽 10mm의 여백을 두는 일이다. 마음이 편-안 해지면서 이제 뭔가를 써도 되겠단 생각이 든다.

이렇게 편집된 용지에 줄 간격 160, 휴먼명조 15 크기로 대략 29줄 문장을 채울 수 있다. 제목으로 2줄 쓰고, 한 줄 띄운 후 쓴다고 치면 26줄 정도가 실제 작성 가능할 것이다. 소위 한 장 짜리 보고서를 3개의 목차로 나뉘어 작성한다고 하면, 목차에 세줄을 쓰고 다음 목차로 넘어갈 때 띄울 여백 두줄도 제외해야 한다. 5줄을 쓰고 나면 21줄이 남는 셈이다.

 

'한 장짜리 보고서'가 중요하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그 한장에 담을 수 있는 문장은 21~22줄이 되는 것이다. 많은 양일까 적은 양일까? :D 2~30장 넘어가는 보고서를 한 번에 써 내려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보통 보고서는 1 -> 3 ->10 -> 20장의 순서로 몸집이 불려진다. 첫 시작인 한 장이 그래서 중요하다.

보고서 작성법 설명에 많이 드는 예시로 "중학생 조카가 읽어봐도 무슨 내용인지 이해 되도록 써야 한다."가 있다. 좋은 비유다. 그러나 쉽게 읽히는 보고서를 쓰기는 참으로 힘들다. 당연한 얘기지만 쓸 내용에 대해 충분한 이해가 없으면 쉽게 쓸 수가 없다. (당연한 소리지 않냐고 하겠지만 충분한 이해 없이 쓰이는 보고서도 적지 않다.ㅠ)

 

내용 파악이 빠삭해지면 전달하려는 바를 쉽게 풀어쓸 수 있다. 잘 알면 잘 쓸 수밖에 없단 말. 그러니까 보고 내용에 대한 숙지가 가장 중요하다는 점을 명심하며 편집과 형식을 그다음으로 신경 써야 한다.

한글 프로그램의 '자간 설정'은 글자 간 간격을 조절해준다. 애매하게 다음 줄로 넘어가는 문장을 깔끔하게 한 줄로 마무리할 때 자간 설정을 많이 활용한다. 거의 뭐 자동반사에 가깝게 쓰는 기능. shift + alt + n(자간을 좁게), shift + alt + w(자간을 넓게). 결론적으로 자간을 많이 줄인 보고서는 좋은 보고서라 할 수 없다. 초보가 많이 하는 실수 중 하나다.

* 자간과 함께 장평이라는 설정도 있다. 자간은 글자 간의 간격을 줄이는 것이고, 장평은 글자 크기를 유지하면서 글자 하나하나의 폭(두께)을 줄일 때 사용한다. 장평 설정 단축키는 shift + alt + j(장평을 좁게), shift + alt + k(장평을 넓게).

보고서는 그 이름처럼 타자에게 전달이라는 목적을 지닌다. 그리고 그 타자는 대개 시간에 좇기는 상사라는 점을 항상 염두에 둬야 한다. 상사는 결론만, 핵심만 알고 싶어한다.(뭔가 멋있어..) 2~3장 분량의 내용을 자간만 줄여 한 장으로 만든다는 건.. 눈가리고 아웅이랄까. 한장 보고서 취지를 벗어나게 된다.

자간을 줄인 분량 조절보다는 내용을 줄이는 게 더 고급스러운 방법이다. 그런데 내용을 줄이면 글은 대체로 어려워진다. 왜냐하면 어미 생략으로 문장을 줄이는 경우가 많아서다.

 

'입주 대상 기관 분석 및 유치 전략 개발'이라는 예시 문장이 있다. 읽기도 해석하기도 어렵다. 어미를 지나치게 생략했기 때문이다. (동사는 어간과 어미로 나뉜다. '작다, 작고. 작으니'에서 '작-'은 어간이고 '-다' '-고' '-으니'는 어미라고 한다.)

 

물론 이 문장이 들어간 보고서를 쓴 사람과 읽는 사람은 높은 확률로 이 문장이 의도하는 바가 뭔지 안다. 그래서 그러려니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보고서가 쓰인 업무적 배경과 타이밍이라는 외적 요소가 많은 부분을 설명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코 좋은 예라고 할 수 없다.

'입주 대상 기관 분석 및 유치 전략 개발'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뜯어서 보자.

1) (어딘가로) 입주를 하려는 기관이 겪고 있는 애로사항을 분석하고, 애로사항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서 를 적극적으로 유치해 내겠다는 말인지

 

2) 이미 입주해 있는 기관들이 어떤 공통점들을 지니고 있는지 해서, 비슷한 특징을 지닌 기업들추가로 발굴해  입주를 유치하겠다는 것인지..

 

해석에 따라 분석대상(입주를 하려는 기관 vs 이미 입주해 있는 기관), 분석 내용(애로사항을 분석 vs 공통점을 분석), 전략 대상(입주를 고민하는 기업을 유치 vs 새로운 기업들을 발굴하고 유치)이 달라진다.

예시로 든 1)과 2) 외에도 보고서 원문이 의미할 수 있는 내용이 많다. 어미를 지나치게 생략하다 보니 그 뜻이 모호해지게 되는 것이다. 중요한 사항에 대해서는 차라리 한 줄 더 길어지더라도 쉽고 명확하게 쓰는 게 낫다. 중요한 내용은 늘리고, 중요하지 않는 건 줄이는 식으로 보고서를 입체적으로 작성하는 게 좋다.

중요하지 않다면 문장 전체를 들어내는 것도 좋다. 그 고통(?)을 감수하기 싫어 이것저것 단어만 바꾸다 보면 고약한 문장이 나온다.(주화입마..) 한 두 단어 바꿔서 될 일이 아니란 생각이 들면(대개 느낌이 옴) 맘 단단히 먹고 문장 전체를 들어내야 한다.

결론적으로 보고서를 줄이기 위해서는 보고서가 담고 있는 내용에 대한 이해와 숙지가 가장 중요하다. 모든 내용이 중요해 2장을 1장으로 줄일 수 없다는 확신이 있다면 굳이 줄일 필요는 없다 생각한다. 그러나 대개는 내용을 확실히 이해하고 있고, 상사를 설득시킬 핵심 메시지에 확신이 있다면 한 장으로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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