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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술의 기술

덩어리로 논리 만들기 2

by 보통의 작가 2021. 3. 15.

1편에서 설명했던 덩어리 짓기를 좀 더 유식하게 표현하면 MECE 하게 짜는 틀이라고 말할 수 있다. MECE란 Mutually Exclusive, Collective Exhaustive의 두문글자로 '상호 배타적이면서 총합으로는 전체를 이루는 요소의 집합' 이란 뜻이다. 쉽게 말해 덩어리를 만들 때 서로 겹치지도 않고, 빈틈이 생기지도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령 '사랑에 대해 논해보시오' 라는 주제로 논술시험을 본다고 가정해보자. 평가기준이 최소 3,000자 이상일 때 어떻게 글을 써야 할까. '어떤' 글을 써야 한다는게 아니라 '어떻게' 써야 할까를 고민해보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 생각나는 대로 써 내려가면 a4 반 쪽을 채우기도 힘들다. 전략이 필요하다. 그 답을 글 덩어리에서 찾아본다. 사랑을 MECE 하게 쪼개 본다. 현실적 사랑-이상적 사랑이 있을 수 있겠다. 정신적 사랑-육체적 사랑으로도 쪼개 볼 수 있겠다. 유년기-청소년기-성인의 사랑으로도 쪼개 볼 수 있겠다. 사랑이란 단어를 시간으로도 나눠보고, 형태로도 나눠보면서 범주를 설정해 보는 거다.

이렇게 덩어리 지음으로써 내가 논하고자 할 내용이 중언부언하지 않도록 방지하고, 논의해야 할 부분은 빠짐없이 논의했다는 신호를 줄 수 있다. 실제 이런 식의 사고와 글쓰기는 글의 논리를 탄탄하게 만들어 준다.

글 덩어리 짓기의 효과를 알았으니 이제 글 덩어리 짓기를 좀 더 기술적으로 접근해 보자. 막연하게 글쓰기 주제가 던져졌을 때 '어떻게' 덩어리를 지으면 좋을지를 말이다. 크게 세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 누군가가 이미 만들어 놓은 틀을 이용하는 것이다. 학문적인 이론이 대표적이다. 정책 결정을 효율성-형평성 관점에서 검토하는 것, 신규사업을 고객-경쟁사-회사로 분석하는 것 등이다.

둘째, 상호 반대되는 개념을 활용한다. 내부-외부, 남자-여자, 질적 측면-양적 측면, 장점-단점, 거시적 관점-미시적 관점, 하드웨어-소프트웨어 등이다. 가장 일반적으로 쓸 수 있는 방법이다.

셋째, 시간이나 순서를 덩어리 지어본다. 과거-현재-미래, 계획-실행-평가(plan-do-see) 등이다.

덩어리 짓는 방법을 조금만 익혀 놓으면 마치 모듈처럼 가져다 쓸 수 있다. 어떤 주제가 떨어지더라도 적당한 덩어리들을 집어넣어 생각해보면 글의 논리적인 구조를 쉽게 만들 수 있다. 또 덩어리를 지어보면 자연스럽게 쓸 말도 생각난다. 사랑을 유년기, 청소년기, 성년기로 범주를 나누다 보니 추가로 노년기의 사랑도 범주로 추가하게 됐다. 범주로 나누면서 사고의 확장도 이뤄진 것이다. 범주가 정해지면 범주에 따라 떠오르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쓰기만 하면 된다. 막상 5줄도 쓰기 힘든 키워드가 범주화만 떠올려도 10줄에서 20줄 30줄로 확장될 수 있다.

이런 방식이 글을 쉽게 쓰게도 만들지만 읽는 사람도 편해진다. 주제를 덩어리 짓고 그 덩어리에 해당하는 내용들을 차근차근 써 내려가면 글의 체계도 갖춰질 뿐만 아니라 글을 읽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가독성이 높아진다. 엄청난 필력으로 줄줄이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써 내려갔다손 치더라도 읽는 사람은 지치기 마련이다. 지도 없이 길을 찾아다니는 것처럼 말이다.

 

내가 잘 썼으니 핵심 내용만 잘 골라서 읽어달라는 공급자 중심의 접근보다는 상대방이 내 논리를 이해하기 쉽도록 큰 덩어리를 어떻게 구성하게 됐는지 부터 차근차근 써내려 가는 수요자 중심의 접근이 쓰는 사람도, 읽는 사람에게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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