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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술의 기술

덩어리로 논리 만들기 1

by 보통의 작가 2021. 3. 5.

논술강의를 한적 있다. 사후 해설 중심의 논술강의보다는 실전에서 써먹을 만한 '기술'을 가르치고 싶었다.

시험장에서 써먹었던 경험들을 살려 '범주화'라는 네이밍을 붙여서 과외를 했다. 쓸만했던지 반응이 좋았다. 논술학원에서도 괜찮은 접근이라는 평을 들었다. (첨삭 알바를 지원했는데 근무 중인 강사 대상으로 시범수업을 요청하기에 범주화 방법으로 수업을 진행했다. 수업이 끝나고 원장님이 전임강사를 제안했다. 수업이 탁월했다기보다 강사 채용을 염두에 두고 첨삭 알바를 구한 것 같았다. 어쨌든 대치동에서도 먹힐만하다 생각했으니 제안한 게 아닌가 싶다. 수험에 지장 받을 수 있어 정규수업은 거절했고, 구술 면접 첨삭을 두어 번 진행했다.)

논술이든 보고서든 백지에 생각을 현출 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나만 볼 글을 쓰는 게 아니라면 그 글을 읽을 사람을 고려해야 한다. 수험 논술이나 보고서를 쓰는 경우는 더더욱 그러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글을 '잘' 쓰고 싶어 한다. 좋은 글을 많이 읽고 써보는 게 좋은 글 쓰기 왕도란 조언은 힘만 빠지게 한다. 당장 글쓰기가 급한데 실천하기 어렵고 체화되기까지 긴 시간이 필요한 훈련방법은 매력적이지 않다. 좀 더 빨리 그럴싸한 논리를 갖춘 글을 쓸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고민했다. 더 정확하게는, 뭘 써야 될지 몰라도 글을 쓸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뭔 소리야?) 소위 '썰'을 풀수 있게 말이다.

글쓰기를 기술적으로 접근해 봤다. 어떤 문제가 나오든 써먹을 수 있는 기술은 없을까. 수학공식처럼 무슨 문제가 나오든 써먹을 수 있는 공식이 없을까 말이다.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덩어리 지어보는 거다. 예를 들어 가장 알찬 여름방학 계획을 세워오는 사람에게 지원금 100만 원을 준다고 한다면 어떻게 써야 할까? 학기 중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던 토익공부를 위해 학원도 다니고, 인문학 소양을 넓힐 수 있는 독서모임에도 참여하고, 운동도 좀 배우고, 2박 3일로 여행도 한번 다녀오고 싶고.. 하고 싶은 게 많다. 아마 학생들의 계획은 대부분 비슷할 것이다. 특이한 계획이 없다면 다들 비슷비슷한 내용으로 계획을 채울거다. 내용 자체가 특별하지 않다면 그럴싸하게 포장해 보는거다. 논리적인 방식으로..

"이번 여름방학은 체력 강화와 인문소양개발에 투자할 계획입니다." 하고 싶은 일(쓸 내용)을 두 덩어리로 묶어 던진면서 글을 시작한다. 그 다음 던져놓은 덩어리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설명한다. "4학년 진학 후 학업과 취업활동을 원활하게 병행하기 위해 체력을 키우고, 전공 이외의 다양한 자기 계발활동을 하면서 지금까지 열심히 배워온 전공과의 시너지를 창출해보고자 합니다."

이어지는 내용에 방학 동안 하고 싶었던 일들을 덩어리에 넣어서 나열한다.

" 먼저 체력 강화를 위해... 수영장을 등록, 헬스도 병행..", "두 번째 인문소양개발을 위해.. 토익 수업, 독서모임..." 으로 말이다. 쓰고자 하는 내용들을 범주(catogory)로 묶어내면 글이 입체적으로 바뀐다. 보기만 그럴싸한게 아니다. 단순 나열 될 글들을 묶어내는 과정에서 어떻게, 무엇을 묶어낼지 고민하고 분류하면서 실제 글도 논리적으로 바뀐다.

이 방법은 상대를 설득하는데 매우 효과적이다. 전할 말을 범주화 하면서 그 범주화가 상대방으로 하여금 그럴만 하다고 납득이 되는 순간 글이나 대화 흐름을 주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간단한 예시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A기업 3분기 판매실적이 저조한 이유를 김부장은 '2분기 대비 홍보 부족'으로 분석했고, 박과장은 '상품 판매실적을 제품-홍보-경쟁사 관점에서 살펴볼 수 있는데 제품은 작년과 동일했으며 경쟁사의 특별한 동향은 파악되지 않았으므로 홍보를 살펴볼 필요 있음"이라고 분석했다. 도달하는 결론은 같으나 박과장의 분석이 좀 더 논리적인 구색을 갖췄다 할 수 있다.

김부장의 분석은 홍보외에 다른 영향은 없을까란 의문을 품기 쉽지만, 박과장의 분석은 시작부터 세개의 덩어리로 틀을 짜고 들어갔기 떄문에 그 틀에 대해 상대방이 납득할만하다 생각하게만 만들면 상대방이 의문을 품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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